요즘 민주주의

2024. 10. 19. 23:11보관함

어쩌다 보니 한 십 년 만에 노동조합 집행부에 들어가게 됐다. 아직 신입직원 축에 들 때 회사에 믿고 따르던 선배가 없어졌던 노동조합을 새로 만든다고 했었다. 그땐 호기롭게 선배들한테 당신들은 왜 조직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고 욕만 하느냐는 말도 서슴지 않았던 때라, 막상 뭔가 해보라는 제안을 거절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같이 하기로 했다. 그래도 하는 동안은 꽤 열심히 했고, 임기가 끝나고 난 후로는 한 십 년 동안 한 번도 노동조합에서 무언가를 맡아서 일해본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근 십년 사이에도 정말 많이 발전한 게 맞다. 십 년 만에 노동조합을 해보니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많이 느낀다. 한마디로 386식 민주주의라고 해야 할까. 예전 민주주의에서 리더는 감독이었다면, 요즘 민주주의에서 리더는 주연 배우에 가까운 역할이 되었다.

예전 민주주의의 리더는 뛰어난 감독처럼 시놉시스를 쓰고, 시나리오 쓰듯 전략을 짤 참모를 뽑고, 배우와 스탭을 섭외하듯 집행부를 뽑았던 것 같다. 필요할 때마다 공감대가 높은 배우나 스탭과 상의하고 현장을 지휘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역할이라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뛰어난 감독감이라고 지목한 사람을 감독 자리에 앉히는 것 까지였다. 그래서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앞으로 내가 감독이 되면 진짜 재밌는 작품 만들 수 있다’는 약속을 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과거의 흥행작이 이번 작품의 흥행을 완전히 보장하지는 않으므로,  ‘약속’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수는 있어도 ‘약속’이라는 본질을 넘어설 수는 없다.

요즘 민주주의의 리더는 말하자면 주연 배우다. 그런데 감독이 없다. 감독은 유권자 전체다. 한 사람이 아닌 유권자 집단인 감독의 요구를 하나의 의도로 읽어내고, 하나의 대사로 만들어 입으로 내뱉어 온몸으로 그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이 배우인 리더의 역할이다. 감독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연기를 수정해야 한다. 리더 주변의 참모나 집행부도 비중이 다른 배우나 마찬가지다. 그들을 캐스팅한 것은 주연 배우가 아니므로, 주연 배우와 힘을 합쳐 부여받은 배역에 걸맞은 역할을 연기해내야 한다.

훌륭한 배우일수록 똑같은 대본에도 창의적인 해석과 맛깔나는 애드리브를 첨가해서 감독이 요구하는 이상의 연기를 해낸다. 공감대가 높은 배우에게는 더 많은 재량권이 부여되고 배역의 비중도 커진다. 하지만 감독이 부여한 배역과 의도를 벗어나는 정도까지는 갈 수 없다. 어떤 예전 리더는 감독인 동시에 제작자이면서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배우이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배우인 요즘 리더는 아무리 뛰어난 배우라고 해도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을 동시에 맡을 수 없다. 

요즘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약속’만으로는 누구도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오디션을 통해 눈앞에서 연기력을 확인시켜줘야 하고, 대본 리딩을 하면서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력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실제 촬영장에서도 매 순간 감독의 요구에 부응하는 연기를 ‘실현’해내야 한다. 수많은 대중의 제각각인 의견 속에서 일관된 하나의 정책으로 끊임없이 구체화하고, 대중의 디렉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주연배우. 그게 요즘 리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십 년 만에 노동조합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불편함은 그 차이에 있다. 선거를 통해 노동조합 위원장에 당선된 것으로 멈추는 민주주의. 그 이후는 노동조합 위원장의 책임과 재량권 내에서 많은 부분을 결정하고 운영해 나가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세대. 그래서 결국 리더와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어떻게든 리더를 구워삶는 것이 가장 효율적임을 몸으로 체득했고, 그래서 어떻게든 그 유대관계에 복무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대.

어지간해서는 그 의도를 아주 조금도 내비치려고 하지 않는 수줍은 많은 감독님‘들’의 의중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이제 막 캐스팅이라는 고비를 넘기고 시나리오를 읽어내려고 애쓰는 세대와의 간극. 같이 캐스팅된 남자 주인공이 아버지, 어머니, 부인, 자식, 친구 역할까지 하려 드는 걸 발견하게 된 당혹감.

십 년 전 나에게 노동조합을 권했던 당시의 위원장님은 내가 누구보다도 믿고 따르는 분이었지만 십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그런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곰곰이 돌이켜 보면 지난 십 년 동안 나와 그분을 조금씩 멀어지게 한 것은 순간순간 그런 차이를 확인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