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1. 00:24ㆍEssay
민주당 지지자로서 정치를 바라보다 보면 가끔 기이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건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걸 지켜보던 때였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지 모르겠지만 원래 페미니즘은 진보진영이 추구하는 당연한 가치 중 하나였다. 어느 순간 페미니즘이라는 글자의 생김새만 같고 다른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가치를 점령해버렸고, 이제는 더이상 진보 진영 내에서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이전과 같은 보편적인 여성인권 운동을 나타내지 못하게 되었다.
생각난 김에 한가지를 더 꼽자면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문제로부터 불거진 공정이라는 단어의 점령이다. 좁게는 청년세대를 위해서, 크게는 고용시장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상징적인 조치가 젊은 세대의 '공정' 이라는 역린을 건드렸다는 거였다. 공정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감각은 정말 그렇게 예민한 것이었는지, 솔직히 나는 그 세대가 아니라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그 시대가 부추겨 만들어낸 분노가 결국 실재가 되어버린 것 아닐까 하는 느낌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다.
내가 이 세상과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게 맞나 싶은 정도의 답답함을 느끼며 조국 사태를 겪고 이재명 대장동 수사를 시켜봐왔다. 그리고 아마도 이재명 대통령 임기 동안은 하루 하루가 사이다 같은 기분좋은 날들이 펼쳐지리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요즘 정부와 민주당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때보다 더 심란하다.
그래서 쓴다.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정청래 지지의 이유.
자기정치
정청래가 당대표를 하는 동안 가장 많이 그를 공격했던 단어, 자기정치. 정청래를 향해 '자기정치'라고 말하는 김민석의 의도는 정청래가 '후당선사' 하고 있다는 문제제기에 있다. 정말 그런가? 모든 정치인은 자신의 세계관을 담은 자기 정치를 펼친다. 나는 오히려 정청래 대표의 자기정치가 '이재명 정부 지원'이라는 도구적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러는 김민석은 자기정치가 아닌 남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뜻인가? 당원이 뽑은 후보를 버리고 정당성도 신의도 없이 그저 인기 많아 보이는 후보에게 갔던 그 시절의 김민석을 소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느낌일 뿐이지만 김민석의 총리 시절 언론 PT나 당대표 출마 기자 회견을 보면 대선에 출마하는 정치인이 내뿜는 도파민이 느껴진다. 잘 기획되고 잘 준비된 매끄럽고 때로는 거친 호흡을 완벽하게 연기하는 연기자. 자신의 욕망보다 더 크고 무거운 시대적 사명을 바라보는 정치인의 무거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당대표를 연기하는 사람은 정청래일까 김민석일까. 다시 한번, 그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온게 아닌데도 내 눈에는 너무 확실하게 보인다. 스스로 그 언어를 사용했던 그 의미 그대로, 자기정치를 하는 사람은 김민석이다.
1인 1표제
김민석은 정권 연장만이 개혁의 완성이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진일보와 후퇴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도 민주당을 여기까지 만들어온 지지자 모두에 대한 모독이다. 정권 연장에 실패하더라도 민주당이 이룬 개혁은 대한민국의 경험이고 자산이 되어 민주적 기준을 조금씩 위로 밀어올렸다. 끊임없는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가 주목하는 민주국가의 가장 세련된 모델로 대한민국이 거론되는 오늘이 있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을 건너 뛰고 선거에 졌으니 실패라는 주장은 민주당의 언어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민주당의 지지자로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1인 1표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기득권을 한순간에 부정할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1인 1표제를 완성시킨 정당. 정말 손이 많이가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다는 자부심이 1인 1표제다. 그리고 그것을 무뚝뚝하게 관철시켜낸 정청래. 김민석의 논리로 정청래를 응원한다. 정청래 당대표 체재의 재창출만이 1인 1표제 정당개혁의 완성이다.
폭력적
정청래를 향한 유투버들의 조롱을 보고 있으면 윤석렬 정권 초기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 몰려들었던 극우 유투버가 생각난다. 같은 진보진영이라고 여겼던 채널들의 눈빛이 더 희번덕거린다는 사실이 처참하게 느껴진다. 더 효과적으로 조롱하려고 조국을 엮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묶고, 김어준, 유시민을 가져다 붙이는 모습이 저열하다. 그런 종류의 조롱은 민주당에는 낯선 것이다. 민주당에 일베가 퍼지고 있다는 경고가 사실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청래가 출마하지 않으면 나도 당대표에 출마할 일 없다. 누가 봐도 김민석과 한 편인 송영길이 한 말이다. 민주당은 출마 자체를 막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당이 아니다. 민주당은 자신의 권리만큼이나 타인의 권리에 민감하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정치적 주장을 지지하는 곳이다. 정당한 절차와 근거 없이 타인의 권리를 훼손하려는 시도는 폭력으로 읽힌다.
민주당 지지자는 그런 폭력은 반드시 되갚아준다. 민주적인 절차로.
이재명 정부
이재명 대통령인지는 모르겠다. 이재명 정부인것은 확실하다. 이재명 정부의 총리였으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 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김민석과 그 우군을 지원사격하고 있으니까. 이재명 정부는 이런 생각이 들게 한다.
민주국가의 정부와 여당의 관계가 원래 이렇게 권위적이고 수직적이었나?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모든 정책이 실현되길 응원했지만, 그것이 현실정치에서 이런 방식으로 추진되리라 상상했던 적은 없다. 마치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을 대하듯, 왜 국무회의가 생중계되는데 당에서는 그 중계를 시청하고 딱딱 맞춰서 정책을 가져오지 않느냐는 김민석의 고압적 태도는, 다시 한번 민주당의 DNA가 아니다. 원래는 몇년 총리를 하려고 했는데 너네 하는 꼴을 보니 몇달만에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직접 내려가겠다는 말이 어떻게 그렇게 술술 나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다.
요즘 시사방송에서 툭하면 나오는 말이 있다. '그게 대통령의 뜻이다.'
언제부터 민주당의 정치가 대통령의 뜻이라는 한 마디로 상대방이 입을 다물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수준으로 하찮아졌나. 어떻게 그런 전근대적인 발언을 입에 담는 사람도, 마주앉아 듣는 사람도, 옆에서 진행하는 사람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이 되어가고 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체로 그럴 것이다. 열렬히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자가 있고, 그 밖의 민주당 정치인들은 민주당 뱃지를 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적당히 너그럽게 지지해주는 마음. 그 너그러움이란, 때로 어떤 정치인의 눈빛에서 개인적이고 사적인 욕망이 빛나더라도 적당히 눈감아주고 큰 틀에서 지지를 유지하는 마음이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지키는 마음으로, 정청래 당대표를 응원하게 된다. 정청래가 대선후보감이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지금 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지지자들을 그런 상태로 이끌고 있다는 뜻이다.
그 모든 것들이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권력지향적인 국민의힘에서나 가능한 일들이었다.
여러번 말하지만 그것은 민주당의 방식이 아니다. 민주당의 감수성이 아니고, 민주당의 언어가 아니다. 민주당이 1인 1표제라는 민주적 제도를 갖추자 마자 이 모든 공격이 시작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최소한 이 국면에서만큼은 정청래가 민주당의 DNA이고, 김민석은 이를 공격하는 국민의힘DN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