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샐러리맨의 영화 - 디스트릭트9

2009. 10. 23. 01:28Review


'죽여주는 영화'를 만났을 때 나는 항상 온 몸이 경직된다. 극장 의자에 등과 뒤통수를 밀어붙이고는 굳은 표정으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못한다. 영화가 리듬감을 놓치고 늘어지기 전까지는 이렇게 온 몸이 긴장된 상태로 힘들게(?) 영화를 본다. 디스트릭트9 덕분에 간만에 영화관을 나서는 몸상태가 뻑적지근했다. 죽여주는 영화였다.

쵝.오. >_<


영화는 요하네스버그에 불시착한 외계인을 인간들이 격리수용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지능이 떨어지고 폭력적인 외계인 때문에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MNU는 이주를 결정한다. 물론 위력적인 외계인 무기를 회수하는 것이 인간들의 속내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외계물질(영화에서는 유동체라고 표현된다)에 노출된 비커스. 외계DNA가 몸 속에 번식하면서 팔부터 조금씩 외계인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유동체가 묻은 건 얼굴인데 왜 변하기 시작하는건 왼팔부터일까?) 덕분에 외계인만 사용할 수 있는 외계인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비커스의 세포조직은 MNU의 타겟이 된다. 외계인 격리 이주 작전의 책임자였던 주인공이 순식간에 인간에게 쫓겨 외계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UFO라고 워싱턴으로만 오란 법 있어?


디스트릭트9의 가장 큰 힘은 뛰어난 연출력! 신인감독이라는 '닐 블룸캠프'는 그 발음하기 힘든 이름만큼이나 불친절한 영상으로 영화를 채워놓았다. 페이크다큐라고 하는 일종의 '설정된 다큐멘터리' 형식을 사용했다. 예전에 엄청 기대했다가 망했던 괴수영화 '클로버필드'도 페이크다큐 영화였는데, 영화 속 등장인물이 들고다니는 카메라의 시점으로 영화가 채워져 있다. 이 영화는 인터뷰 영상, CCTV, 뉴스화면 등을 스토리 전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디스트릭트9을 굉장히 사실적인 SF영화로 만들어놓았다.

바로 요런 뉴스영상이 짱이란 말씀


감독 칭찬하느라 먼저 언급하지 못했지만 영화가 설정하고 있는 상황도 흥미롭다. 외계인 영화를 볼 때마다 "왜 외계인은 항상 인간보다 뛰어난가?" 하는 의문을 가졌던 관객이라면, 인간에게 통제받는 외계인 이야기가 반가울 것이다. 여기에 비커스라는 다소 찌질한 인간이 주인공이 되면서 이야기는 훨씬 더 흥미진진해진다. 

비커스는 등장인물 중 우리와 가장 가깝다. 직장에서 적당히 비굴하고, 상사 에게 깔보이면서도 친한 동료끼리는 곧잘 어울리지만 사실 능력은 별 것 없는 그는 따지고 보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샐러리맨이다.(난 그 평범한 샐러리맨도 못되는거니.. ㅠㅠ) 한가지 다른 점은 장인어른이 MNU 회장(맞나?;;)이라는 엄청난 혼맥......... 부럽다... ㅠㅠ. 그런 그가 회사의 이름을 등에 업고 약자(외계인)를 짓밟는 모습이나, 결국 그 회사로부터 철저히 이용당해 말그대로 골수까지 빼주게 생긴 상황, 결국 아쉬울 때 찾아간 곳이 잘나가던 시절에 미운정(?) 들었던 그 약자라는 사실까지. 게다가 가족 먹여살리느라 '산업재해' 좀 당했기로서니 마누라라는 사람은 철저히 비커스를 외면해버렸다!!! 블룸캠프 감독네 동네도 우리나라만큼이나 처절한 장삼이사들의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 한방울 찔끔.

회사는 직원 등골까지 뽑아가야 속이 시원하다.


외계비행체가 멈춘 곳이 워싱턴이나 뉴욕이 아닌 '하필' 요하네스버그라는 설명도 재미있었다. 자기들 멋대로 지구인 대표직을 수행해 온 헐리우드 영화들의 설정을 꼬집는 부분이다. 디스트릭트9 내에서 외계인 무기까지 받아가면서 장사를 해먹는 갱단의 상술, 전지구를 넘어 전 은하계로 뻗쳐나가는 인권단체들의 오지랖, 결국 목적은 무기와 돈이었던 MNU의 비도덕성까지. 영화 곳곳에 숨겨진 날카로운 현실묘사도 일품이다.

비교적 담담하게 묘사된 외계인의 모습



뭐. 이런 질문들은 자연히 디스트릭트'10'이 나와서 속시원히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아직 후속편에 대한 구상은 없다고 하던데,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_+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회용 인간도 인간이다.  (1) 2009.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