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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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치
나의 가치를 입증해 보이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내가 가진 생각, 내가 하는 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무엇이 있고 그것이 얼마나 가치로운 일인지, 그래서 나는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를 보란듯이 내보이고 싶은 순간이 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보란듯이 내가 얼마나 멋진 인간인지를 자랑하고 싶을 때가 있다. 대부분은 실패다.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것은, 이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는 순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이 아닌 가상의 장미빛 미래일 뿐이니까. 안타깝게도, 그것은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나에 불과하다. 새로운 사람과 마주하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바로 지금 현재 순간까지 현실에 드러난 나. 혹은 그마저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
2018.01.14 -
형식의 예절
경조사가 많은 주말이었다. 한 번의 결혼식과, 두 번의 장례식이 있었다. 오래 머무르지는 안았지만 잠깐이라도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왔다. 사회생활에 요령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장례처럼 어려운 일에는 꼭 다녀오려고 한다. 마음이 힘든 순간에 누군가 찾아와 인사를 건내고 돌아가는 것 만으로도 적잖은 위로가 된다. 굳이 어떤 위로의 말을 건내야 할지, 어떻게 내 마음을 다 전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정해진 형식을 따라 예절을 갖추는 것 만으로 충분히 위로가 된다. 나는 인간관계에 요령이 좋은 편이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한참 후에 뒤늦게 내가 안해도 될 말을 한건 아닐지, 괜한 짓을 한건 없는지 고민에 빠지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 고민은 굳이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어떤 마음..
2017.12.17 -
30초만큼도 바뀌지 못하는 인간.
출근길. 오늘도 간발의 차이로 타야 할 버스를 놓쳤다. 어쩌면 이렇게도 매일 똑같이,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버스가 지나가는걸 바라봐야 하는 걸까. 경기도 광주에 사는 나는 빨간색 1150번 버스를 타고 다닌다. 먼 거리를 다니다 보니 일찍 출근해서 늦게 귀가하느라 항상 잠이 모자라다. 서울역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를 타야 모자란 잠을 보충하며 갈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지하철로 갈아타는 코스를 잡을 수밖에 없다. 자연히 버스에서 잘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 중요한 버스를 나는 항상,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친다. 1분만, 아니 30초만 빨리 나와도 탈 수 있는 것을! 단 30초만큼도 변하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 여자친구와 싸울 때마다, 나는 또다시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내가 타야할..
201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