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2018. 10. 21. 18:00Essay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친구 결혼으로 부산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다음날 아침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전날 마신 술이 채 깨지 않은채로 급하게 운전해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백수를 누린 할머니는 생전에 쌓은 덕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땅에 묻혔다. 때때로 슬픔과 울음이 터져나왔고, 때때로 웃음과 장난이 오가며 그렇게 잔치처럼 저 세상으로 떠났다.


시집간 큰딸의 막내이자 장남인 나를 볼 때마다 할머니는 '왔냐' 한마디에 애정과 믿음을 담아 보냈다. 그것이 유별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건 아무래도 괜찮다. 살갑지는 못했지만 깊은 유대가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나에게도 이어졌다. 그렇게 생각한다.


예전부터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며 종종 '칠갑산'을 흥얼거렸다. 그땐 몰랐는데 이제야 그게 어머니 본인의 이야기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어린가슴속을 태웠소.' 칠갑산 앞마을에 할머니를 두고 서울로 시집 온 어머니는 그 '칠갑산' 노랫말에 얼마나 많은 걱정과 설움을 담았을까.


오늘은 문득 마음이 아프다. 할머니가 가신 것보다, 엄마에게 더이상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메인다. 엄마가 슬플때 보러 갈 엄마의 엄마가 없어 엄마는 외롭고 쓸쓸하겠다. 엄마없는 엄마의 슬픔을 상상하니 엄마의 아들은 문득 서럽고 서글프다.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글 포토  (0) 2019.04.08
연초, 아이코스, 금연.  (0) 2018.11.10
나의 가치  (0) 2018.01.14
형식의 예절  (0) 2017.12.17
이것이 나의날  (0) 201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