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악과 싸우는 사람들

2020. 6. 7. 13:17Essay

2012년 12월 대선의 첫번째 TV토론에서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향해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이번 대선에 출마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끼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 해방되자 쿠데타로 집권하고 한일협정을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공중파에서 언급된 적 없었던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이 등장하자 일동 당황했다. 그 대선의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박근혜가 당선되었고, 통합진보당은 해체되었다.

 

이정희가 되는 것은 쉽다. 전국민이 바라보는 티비토론에 나와 누구도 부를 수 없었던 이름을 당당하게 호명하고 정치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다. 동의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 일의 보복인지 아닌지 통합진보당은 아예 해체되어버렸으니까. 박정희와 유신정권의 잔재와 맞서 싸워온 이들에게 이런 간단한 표현이 불쾌할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그것이 쉬운 일이라는 건, 가장 쉽게 눈에 보이는 가장 큰 거악에 돌맹이 하나 던지고 퇴장해버린 허무한 도발이었기 때문이다. 상대후보 아버지의 친일 경력 한번 언급하는 것으로 세상이 개벽하지는 않는다.

 

거악과 싸우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외면하려 해도 외면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전면적인 부정을 마주하면 대부분은 그 힘에 순응한다. 결연히 들고 일어나 그 부정과 맞서 싸우는 소수는 용기있고 숭고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 그 부정은 점차 치밀하고 교묘해져 사람들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세상의 한 부분을 이룬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것을 악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 내 선배의, 내 동료의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어떻게든 이 세상을 작동하게 하는 하나의 원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원리의 이름은 ‘관례’다.

 

그러나 여전히 거악에 맞서 작은 돌맹이 하나라도 들고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싸워야 할 큰 부정은 껍데기만 남고 그 자리엔 세상의 원리인 관례를 따라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나의 선배, 나의 동료, 나의 친구들이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돌을 던진다. 그 돌팔매질은 정교하게 조준된 혼신의 반격일까. 아니면 돌팔매질 또한 함께 이 세상에 자리잡은 ‘관례’에 불과한 것일까. 그 작동의 원리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언가에 '맞서는 행태'만 반복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과거에 그들은 지혜를 사랑했으나, 이제는 철학자라는 칭호만을 사랑한다'는 말대로, '과거에 그들은 부정과 싸웠으나, 이제 그들은 투사라는 칭호만을 원하는 것' 같다.

 

우리 대학은지금 중요한 변화를 이루어내는 중이다. 명문화된 규정 없이 관습에 따라 이루어지던 총장선출제도를 공식적인 제도로 다듬으면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구성원의 범위도 크게 확대했다. 실제 각 구성원별 투표결과의 반영비율은 앞으로 시간이 지나며 더 합리적으로 조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습성이 특히 강한 교직원사회에서, 우리대학의 총장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선출된다는 사실은 대학 경영자의 권위를 인정하기 힘들게 하는 이유들 중 하나였다. 구성원 다수의 뜻을 모아 선출된 것이 아니라 일부 교수들만의 총장이라는 인식은, 손쉽게 총장을 비난하는 데 좋은 알리바이였고, 틈만 나면 목소리를 높여 직원들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활용되는 레파토리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월급받고 다니는 직장에서 경영자를 내 손으로 뽑아야만 한다는 주장은 조금 이상하다. ‘네가 도전할 수 있다면 나도 도전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한편으로 이해할만한 구석이 있지만, 그것은 단지 감정적인 이해일 뿐이다. 직장에 고용되어 근무하는 노동자가, ‘내가 뽑지 않은 경영자는 인정할수 없다’고 말하는 데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가? 아무튼 그래서, 혹시라도 정말 당신의 손으로 뽑은 경영자가 온다면, 구성원과 비전을 공유하고 지지를 획득하여 총장과 직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이 대학의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을것이라고, 정말 그렇게 장담할 수 있을까?

 

멍석 깔아달라는 사람 치고 멍석 위에서 춤추는 사람은 없다. 유신잔재 척결과 민주화 쟁취라는 멍석을 찾던 이정희는 인상적인 돌맹이를 하나 던지고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다. 뻘쭘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문재인 후보는 묵묵하게 당을 추스렸다. 시간이 지나 박근혜는 탄핵됐고,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성실하게 우리 삶을 바꿔나가고 있다. 대학의 총장 선출에 더 많은 구성원이 참여하는 것은 나름의 가치가 있는 일이겠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각자의 역할과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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